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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담버스"아지트"가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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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나의집 작성일17-10-23 09:29 조회19,7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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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아이들 위해… 청소년 상담 버스 '아지트'가 달려갑니다.

26년간 청소년 보호 활동 실천… 최근 버스 개조한 상담소 운영, 의료·의복·식사 등 무료 제공  "마리아처럼 아이들 곁 지킬 것" 

올해로 환갑을 맞은 회색 머리칼의 노(老)신사는 새벽 기도로 하루를 연다. 이탈리아어로 한 번, 한국어로 또 한 번.

"오늘도 상처받은 아이들을 지나치지 않고 살필 수 있게 해 달라"는 그의 기도는 지난 26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기도의 주인공은 지난 1990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김하종(빈첸시오 보르도) 신부다. 그는 한국에 온 이듬해 경기 성남에 터를 잡고 청소년 보호 활동을 시작했다. 공부방과 쉼터(보호소)를 운영하며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보듬었다.

요즘은 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청소년 상담소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를 몰고 '위기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다닌다. 

 

◇방황하는 아이들 위해 거리로 나선 신부

 

지난 22일 오후 6시. 'A지T(아지트)'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버스 한 대가 성남 신흥역 3번 출구 앞에 멈춰섰다. 김하종 신부가 양손 가득 막대사탕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는 버스 앞에 서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었다. "이따 아지트에 보드게임 하러 올래?" "다 같이 라면 먹으러 와." 쭈뼛거리던 아이들이 사탕만 받고 휙 가버려도 김 신부는 밝게 웃었다.

"사회가 변하면서 아이들도 바뀌었습니다. 6~7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 보호소는 큰 역할을 했어요. 많은 아이가 스스로 찾아왔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막노동을 해 고시원에서 살거나, 심지어 노숙도 마다하지 않아요. 고민 끝에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자'고 결론을 내렸죠."

이동식 상담소인 아지트는 지난 2015년 7월 9일 문을 열었다. 중고 버스 한 대에 외국인 봉사 모임 '사마(SAMA)'로부터 후원받은 780만원을 가지고 무작정 운행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김 신부는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며 밀어붙였다.

김하종 신부는 일주일에 4번, 야탑역·신흥역 등 요일별로 정해진 곳에 아지트를 세운다. 운영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이들에게는 각종 상담·의료·식사·의복·위생용품 등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지트를 이용한 청소년은 1만429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6079명이 전문 상담사에게 가정 불화, 학교 폭력, 성폭력 등 아픈 과거를 털어놨다. 60명의 가출 청소년은 다시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요즘도 하루 평균 50여 명의 청소년이 아지트를 이용하고 있다. 

 

'신부' 대신 '나'… "눈높이 맞춰야 소통 가능해"

 

"신부님, 이리 좀 와보세요."

인터뷰 도중 한 여중생이 김하종 신부에게 손짓했다. "사실, 저 남자 친구 생겼어요. 얘가 제 남친이에요." 김 신부는 "넌 참 운이 좋은 아이"라며 소개받은 남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나타나 귓속말을 하고 도망가는 학생도 나타났다. 김 신부는 "2년 전 인연을 맺은 아이"라며 "그땐 가출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집에 돌아가 잘 지내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처음 아지트에 온 사람과는 무조건 '하이파이브'부터 해요. "무엇 때문에 찾아왔느냐"고 절대 묻지 않죠. "눈이 참 예쁘다"

"그 신발 멋진데?" 같은 칭찬으로 말문을 열어요. 아이들을 만날 땐 내가 '신부'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신부님 생각에는'으로 시작하면 결국 '뻔한 어른'이 돼 버리죠."

김하종 신부는 청소년과 노숙인을 위한 쉼터와 무료 급식소 등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을 이끌고 있다. 아지트는 안나의집이 벌이는 여러 활동 가운데 하나다. 그는 "부족한 운영비 때문에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며 웃었다.

"안나의집을 꾸려나가는데 하루 평균 600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 중 40%는 지자체의 지원으로 해결되지만, 나머지는 전적으로 후원에 의존하고 있죠."

그는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시로 전국 천주교 성당을 다니며 도움을 청한다. 일 년에 딱 한 번 고국 이탈리아에 가는데, 거기서도 현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를 만나 아지트를 알리는 데 힘쓴다. 다행히 따뜻한 손길은 꾸준히 늘고 있다. 신혼여행비를 줄여 기부한 부부, 폐지를 주워 번 돈을 낸 노인 등 쌈짓돈을 털어 보내주는 '보통 사람'들이 안나의집을 지켜낸 일등 공신이다.

김하종 신부는 재작년 귀화해 한국사람이 됐다. 그의 낡은 지갑에는 '장기 기증서'와 '사후 신체 기증서'가 항상 꽂혀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피안사노에서 빈첸시오 보르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한국 성남의 김하종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웃었다.

"요한복음에 '예수의 십자가 곁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서 있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그 마음을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이 들 때면 저는 '서 있었다'는 마지막 부분을 떠올립니다. 앞으로도 아지트는 항상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겁니다."